
얼마 전 한 영상을 보다가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되게 간지러운가 봐요, 크면서 사라졌죠." 그 짧은 장면이 과거를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릴 적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목덜미를 스치는 가위의 차가운 금속성이나 타인의 낯선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을 움츠리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그 간지러움은 일종의 방어기제이자 세상과 맺는 아주 즉각적이고 생생한 촉각의 교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저는 그 의자에 가만히 앉아 졸거나 멍 때리는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그 '사소한 감각'들을 다시 깨우기 위해, 밖으로만 흩어지던 시선을 잠시 거두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강력하고 거친 자극들로 꽉 차 있습니다. 머리를 만질 때의 그 미세한 간지러움을 느끼기에는, 당장 위층에서 울리는 불쾌한 층간소음이 제 신경을 온통 갉아먹고 있으니까요. 그 스트레스와 예민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유튜브 숏폼이나 자극적인 영상 매체라는 더 강한 시각적, 청각적 마취제를 찾습니다. 온종일 화려한 화면과 누군가의 떠들썩한 일상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정작 내 피부가 느끼는 온도의 변화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질감 같은 아주 작고 사적인 감각들은 낄 틈이 없어집니다. 신체적인 간지러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크고 폭력적인 자극들에 덮여 무뎌진 채 방치되어 있었던 겁니다.
나이는 조금 들었지만, 솔직히 제 안에는 여전히 작은 일에도 마음이 간질거리고 설레거나, 혹은 낯선 것 앞에서 쭈뼛거리는 예민한 아이가 남아있습니다. 그 여린 마음을 지키려다 보니 오히려 외부의 거친 소음이나 타인의 시선에 더욱 뾰족하게 날을 세우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머리를 감겨주는 부드러운 손길에는 무감각해지면서, 원치 않는 천장의 소음에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이 아이러니. 그것은 제 안의 안테나가 내면의 섬세한 감각이 아니라, 외부의 스트레스와 방어에만 맞춰져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목욕탕의 뜨거운 수증기가 얼굴에 닿을 때의 낯섦,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미간을 찌푸리던 미각. 우리는 피로라는 핑계로 이 모든 '나만의 감각'들을 기꺼이 마취시키며 어른이 된 척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외부로 향하던 시선의 스위치를 끄려 합니다. 가끔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자극적인 영상 대신, 거칠어진 제 손끝의 감촉이나 오늘 아침 이불속의 서늘한 온도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잊고 지냈던 아주 작고 사소한 감각 하나를 의식적으로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타인의 손길이 간지러웠던 어린 시절의 그 감각처럼, 덮어두었던 나만의 섬세한 안테나를 하나씩 다시 세워보는 겁니다. 바깥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을 줄이면, 비로소 내 몸이 기억하는 작고 다정한 감각들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