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들어 부쩍 기억이 흐릿합니다. 예전에는 길을 걷다 마주친 동상의 모양 하나, 혹은 퇴근길 버스 창에 맺힌 빗방울 하나에도 수만 가지 생각과 감상을 덧붙이곤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소한 풍경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마음의 여유와 반짝이던 감각들을 어디에 흘리고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듯 지나 보내다 보니, 머릿속 기억들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억지로 새로운 기억을 채워 넣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비워낼 수 있는 '완전한 정적’을 되찾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유를 가만히 짚어보니 알 것 같습니다.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온전한 안식을 찾아 돌아온 집. 하지만 그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마주하는 불청객 같은 소음들, 그리고 그로 인해 겹겹이 쌓인 피로가 제 기억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린 모양입니다. 천장을 울리는 둔탁한 발소리나 날카로운 마찰음 같은 원치 않는 자극들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나의 공간은 더 이상 휴식처가 아닌 긴장의 연속이 되어버렸습니다. 생존을 위해, 혹은 그저 이 불쾌감을 견뎌내기 위해 뇌가 에너지를 온통 그쪽으로만 쏟아붓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정작 소중히 간직해야 할 일상의 사소한 기쁨이나 기분 좋은 상상들을 챙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가졌던 진짜 가치를 깨닫곤 합니다. 지난번 글에서 소개했던 '숫자가 사라진 노란 시계'처럼, 때로는 본래의 익숙한 기능을 잃었을 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새벽의 공기, 타인의 소음이 개입하지 않고 오롯이 내 생각의 주파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평화로운 시간이 세상 어떤 것보다 값비싼 물건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백화점 쇼케이스 안에서 조명만 고스란히 받고 있는, 감히 가질 수 없는 귀한 오브제처럼 말입니다. 최근 제 기억이 유독 희미해지는 건, 어쩌면 이 거칠고 불쾌한 자극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제 마음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내린 처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력이 바닥났다는 건, 이제는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고 조금 쉬어가라는 몸의 다정한 신호일 겁니다. 굳이 도망가는 기억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지금은 그저 텅 비워진 제 마음의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려 합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려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스스로에게 한 가지 위안을 건넨다면, 이 길고 소란스러운 시간이 무사히 지나고 나면 텅 비워진 그 자리에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예쁜 것들이 다시 채워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빈 공간이 있어야 새로운 가구를 들일 수 있듯, 지금의 이 공백은 더 나은 취향을 담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오늘 밤은 거실의 모든 소음을 끄고, 켜둔 작은 조명 아래서 그저 무심하게 놓여있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을 권리를 온전히 누리면서요.
여러분은 요즘 무엇 때문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고 계신가요? 혹시 저처럼 일상의 소음이나 팍팍한 스트레스에 밀려, 정작 간직해야 할 소중한 무언가를 잠시 놓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억지로 애쓰는 대신, 자신에게 '고요한 정적'이라는 가장 값비싼 오브제를 선물해 보시길 바랍니다.